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03화 시간을 버리지 마십사
시간은 째깍째깍 가고 있는데 000 님은 결정을 못 하시고 그럴수록 내 마음도 조급해진다.
(아무튼) 오늘 일반검진은 하시겠어요?
-(위내시경검사, 대장내시경검사를) 같이 해야 하는데….
위암검진은 2년마다 나오고 작년 거는 다른 곳에서 작년에 다 하셨고 올해는 그냥 일반검진과 분변잠혈(대장암)검사만 있고 구강검진은 검진을 하는 치과를 이용하시라는 설명을, 하다 보니 벌써 두 번이나 한 뒤다. 물론 위암검진은 내년에 또 나온다는 것도 잊지 않고 알려드렸다.
-아, 할 때 같이 해야 되는데. 그게 그렇게 밀려요? 다른 데도 밀리겠지?
그러게요.
내가 직접 알아본 건 아니다. 접수대에 앉아있으면 여기저기 들렀다 오시는 분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그걸 맞춰 보면 단순히 여기만 밀리는 건 아닌 것 같다. 요즘엔 대장내시경검사를 많이 하시니 더 그런 것 같다. 그렇긴 해도 여기가 특히 심하게 밀려있는 건 맞다. 아무래도 다른 곳을 이용하시는 게 더 빠를 것 같다. 000 의원은 어떠신가? 작년에도 거시서 하셨던데. 이런 얘기도 아까 다 해서 내 대답의 길이는 갈수록 줄어든다.
-하, 같이 해야 되는데… 대장내시경이 그렇게 밀렸어요?
네!
이제 곧 수면내시경 검사 차례고, 그럼 내시경실에서 나를 부를 것이고, 그럼 나는 이 접수대의 자리를 떠야 하고, 그럼 000 님은 그만큼 또 기다리셔야 할 거고 그러니 서로 아까운 시간 버리지 마십사 하는 바람으로다가 여전히 내 손에 들려있는 소변컵을 살짝살짝 흔들며 애절하게 여쭤본다.
오늘 일반검진은 하시겠어요?
-하, 같이 해야 하는데….
오늘 일반검진은 하시겠어요?
-흠….
수면이요!
소변컵을 든 손이 무너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