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새해 일기

이제 사흘이 지났다. 작년? 작년이라, 벌써 작년이라는 말을 쓰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아무튼 작년 연말에도 검진센터는 예외 없이 북새통이었다. 그리고 새해가 밝았다. 출근해서 보안기를 끄고 문을 열고 컴퓨터를 비롯한 점진센터의 이런저런 장비들 전원을 켜는 것은 여전하다. 달라졌다면 이 공간을 꽉 채웠던 수많은 말, 분주한 걸음들, 울리던 전화벨, 차고 넘쳤던 채뇨 바구니, 날아갈 듯 휘갈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그 와중에 터졌던 공단 서버…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단지 하루라는 날짜가 바뀌었는데 말이다. 그 하룻밤이 ‘한 해’라는, 등짐이 젤 무거울 12월 31일과 1월 1일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작년에 다하지 못한 일거리는 잔뜩 쌓여있다. 지난 회에도 말씀드렸지만 늘어난 수검 인원만큼 잡무도 늘어나서 발송, 청구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일이 늘어날 걱정은 없으니 마음의 여유는 가져도 되지 않을까. 특히 18년도는 건강검진이 바뀐 게 많아서 연초에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었는데 적어도 올해는 그런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잘한 것은 있는데 그중에 40세, 50세, 60세, 66세, 70세 등 늘어난 문진표 작성을 검진 당일에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나눠서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이런 현장의 실상과 동떨어진 결정은 대체 누가 내리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쁘니까 검진 당일이 아니라 다른 날에 와서 나머지 문진표 작성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얘긴데 그만큼 늦어지는 결과 통보는? 중복되는 일은? 두 번씩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시간과 돈은?

검진센터에서 몇 년 일한 것만으로 의료계의 전반이나 구조적인 문제를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나 같은 잔챙이라도 보고 듣고 느낀 게 있다면 가면 갈수록 그나마 있던 장점은 줄어들고 문제는 곪아서 일부는 이미 터지고 일부는 그래도 버티다가 죽어 나가는, 의료계의 빈부격차 역시 점점 더 벌어져가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큰 놈만 살아남는, 정말 그게 대세일까? 잔챙이 입장에서는 할 수만 있다면 부정하고 싶은데 말이다.

 

연초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의 안타까운 부고를 들었다. 명복을 비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또 안타깝다… …

 

 

 

아, 그래도 명색이 새해인데, 새해에는 그래도 뭔가, 아니다. 그냥 올 연말, 내년 새해 일기는 즐거운 기억과 희망이 담기기를 바라보자. 흠, 바라고 보니 너무 큰 걸 바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