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86화 채용검진 등등
2월도 중순이 지나간다. 벌써 일 년의 10%가 지나갔다고 누군가 얘기하던데. 아이고, 정말 그러네 싶다. 요맘때부터 검진센터를 분주하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는 채용검진이다. 입사하거나 이직할 때 필요한 검진이다. 일하는데 있어 건강상의 문제가 없다는, 의사가 작성하는 일종의 보증서이다. 대표적으로 공무원채용건강검진이 있다. 사기업에 취업할 때도 대체로 이 기준을 따른다. 그 밖에 폐결핵, B형간염 같은 전염성질환, 정신질환, 마약류 복용 여부 등등 각종 자격증, 면허 발급에 필요한 검진도 많이 하신다. 또 대학의 기숙사 입소검진도 꽤 있는데 주로 폐결핵과 B형간염 검사이다. 이 중에 폐결핵검사(흉부엑스레이)만 요구하거나 둘 다 원하거나 검사 항목은 학교마다 다르므로 본인이 어떤 검사를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검진하는 것이 좋겠다.
때가 때이다 보니 채용검진을 하러 오시는 분을 보면 일단 축하드리고 싶다. 오늘 오신 분 중에는 이제 갓 22살의 정말 꽃다운 청춘도 있었다. 첫 직장일까? 근데 이분은 의외로 차트 번호가 빠르다. 처방 조회를 보니 감기 등으로 이미 6년 전부터 내과를 이용하셨다. 6년 전이면 ‘하셨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고1, 고2 정도? 그런 그가 어느새 직장인이 된 거다. 이렇게 어릴 때 한두 번 내원하고는 한동안 진료 기록이 없다가 성인이 되어 오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럴 때는 뭐랄까, 내가 한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왠지… 뿌듯하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드디어 이 험한 세상에 진짜로 발을 담갔다는 생각에 연민인지 뭔지 복잡 미묘한 감정이 일기도 한다. 왔다가 가는 것이 인생뿐이던가. ‘힐링’도 왔다 가고 ‘욜로’도 왔다 가고 얼마 전에 온 ‘소확행’도 시간이 지나면 또 갈 거고. 시절이 하수상하니 괜히 심란이 심란하고 막 그런다. 너무 나갔나? 이제 첫발을 내딛는 인생에게, 무한한 가능성에게 어설픈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조용히 건투를 비는 것으로 얼른 마무리 짓자.

이 대목에서 정보 하나. 올해부터 만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2년마다 한 번씩 일반건강검진과 구강검진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99년생부터 해당한다는 말씀. 그런데 채용검진과 일반검진은 검사 내용이 조금 다를 뿐 검사 방법이 거의 같다. 본인이 홀수년도 생이고 채용검진이 필요하다면 어차피 일반검진을 올해 안에 받아야 하므로 한 번에 같이 해서 채용검진 비용을 줄일 수 있다. 혹 채용검진을 하지 않는 기관도 있을 테니 검진할 곳에 먼저 문의해 보시길. 그리고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일반검진을 할 때도 식사를 하셨거나 공복이 아닌 상태로 오시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러면 검진을 받을 수 없다. 채용검진도 마찬가지. 하니 빵조각 하나, 사과 반쪽, 밀크커피 조금… 먹고 가셔서 검사도 못 하고 되돌아오는 불상사는 피하시길. 또 공복으로 가시라면 꼭 물도 안 드시고 가시는 분이 있는데 그런 분일수록 또 소변을 못 봐서 고생하시고…. 물은 실컷 마셔도 된다. 다만 체중에 민감하신 분은 빼고.
봄을 기대하기는 이른데 괜히 인생 얘기를 해가지고는 퇴근 후에 술 한 잔 생각나고, 그런 2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