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그대는 바람

-종합검진 받으러 왔어요.

 

종합검진? 틀린 표현도 아니고 심지어 검진센터가 있는 건물 바깥에 ‘종합건강검진’이라고 큼지막하게 붙어있는데도 오늘은 왠지 낯설다. 뭔가 모를, 어떤 결말의 복선이 깔리는 느낌이다. 조회해보니 아직까지 검진을 안 하셨다. 먼저 어떤 항목을 어떻게 하는지 간단히 안내하고 나서 한 말씀 더 드려야 했다.

 

근데 위암검진, 위내시경검사는 예약이 필요한데 저희 검진센터는 연말까지 이미 다 찼어요, 그래서 해당하는 검진을 한꺼번에 다 하시려면 가능한 다른 곳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그럼 지금 되는 거는 없어요?

공복으로 오셨으면…

-어제저녁부터 안 먹었어요.

그럼 일반검진, 그러니까 피검사, 소변검사, 흉부엑스레이, 혈압, 키, 몸무게… 재고 뭐 이거는 지금 하실 수 있구요. 또 식사와 상관없는 유방암, 자궁암검진도 받으실 수 있어요.

-그래요? 나는 다 된다고 해서 왔는데…

그러게요. 검진을 다 하긴 하는데 위암검진, 내시경 예약이 꽉 차서요.

-…

 

조회할 때부터 열어둔 000 님의 차트가… 허하다.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는 있는데 다른 정보가 없었다. 주소, 전화번호는 물론이고 진료 내역도 없다. 순간 뭔가 두 번째 복선을 만난 것 같았다. 처음 내원하시는 분은 신분 확인을 위한 정보-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정도-를 받아서 차트를 만든다. 그래야 진료(또는 검진)를 하고 오더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진료 내역이 없다는 것, 즉 차트만 만드셨다는 말씀은 흔적이 남지 않은 행동을 하셨다는 얘기이고. 이 대목에서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행동'이라면… 그렇다! 오늘도 그냥 가실 확률이 높지 않을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뒤통수를 스쳤다.

000 님은 전화기를 꺼내 들며 나가셨다. 아마도 다른 검진기관을 알아보시려는 것 같다. 다시 오시면,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하시고 못 한 것은 다른 곳을 이용하셔도 되지만 아무래도 편하게 하시려면 한 곳에서 몽땅 다 하시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한 번 더 잘 말씀드려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이것은 000 님의 편의를 위해서지 그냥 가실 확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여볼 심산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점만은 꼭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해서 지금도 검진센터의 투명한 반자동문 너머에서 전화하고 계시는…

 

어라, 000 님은 어디 가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