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유전자의 강

할머니, 엄마 그리고 손자 3대 가족이 오셨다. 검진 대상은 그중에 두 분의 여성인데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할머니와 엄마다. 아이의 맑은 목소리에 자꾸 그 가족에게 눈길이 갔다. 그러고 보니 모녀는 전혀 닮지 않았다. 두 분만 있으면 모녀라고 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그럼 보나 마나 아버지를 닮았을 것이고. 살아오면서 느낀 걸 바탕으로 내 맘대로 만든 유전법칙이 있다. 보통 딸이 아빠를 닮고 아들이 엄마를 닮는다는 건데 대체로 둘째까지 유효하다는 내용이다. 전적으로 내 생각이니 다른 데 인용하지는 마시길.

 

시원한 이마에 약간 긴 얼굴. 짙은 눈썹. 마른 체형. 콧등에서 꺾이는 게 분명하게 보이는 코.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의 외모에서 그런 할아버지의 인상을 상상해보았다. 그런데 아이는 할머니도 엄마도 닮지 않았다. 커가면서 닮아 갈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현재는 아니다. 그럼 답은 하나. 아빠라고 하는 새로운 유전자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아들이 아빠를 닮다니… 이런! 나만의 유전법칙이 방금 깨져버렸다. 아무튼, 닮는 것이 어디 외모뿐인가. 성격은 물론이고 목소리나, 말투, 식성, 취향 등등 한둘이 아니다. 세대에서 새로운 세대로 이어지는 유전자의 흐름을 생각하니 때로는 이어지고 또 합쳐지고 나뉘는, 도도히 흐르는 강과 같은 유전자의 힘이 느껴진다.

‘인간의 몸은 유전자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뭐 어떤가. 그래도 이 광활한 우주의 한 곳 ‘창백한 푸른 점’에서 태어나 한때를 느끼고 부대끼며 사는,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나라는 인간은 보고 느끼고 그릴 수 있는 거 아닐까.

 

검진 센터에서는 유전자에서 우주여행까지 가능한가 보다.

 

흠… 오늘은 작은 일상에서 너무 많이, 멀리까지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