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18화 검은 통, 파란 통
분변잠혈 검사(대장암 검진)를 접수하려고 보니 이미 오늘 날짜로 다른 기관에 수검 표시가 되어있다.
오늘 00에서 검진하셨어요?
-안 했는데.
여기(검진 조회 창)에는 하신 거로 나오는데…
-아니야, 나는 그냥… 그게 어디냐 그 건강 보험인가 뭔가 거기서 하라고 해서 가지고 왔는데.
혹시 까만 통에다 받아 오셨어요?
-아니, 이거는 파란 건데.
그거는 보건소에서 보낸 거예요. 아무튼, 근데 오늘 00에다가 대변을 갖다주신 건 아니구요?
-갖다줬지.
갖다주셨다고? 까만 통에다?
-그렇지, 까만 통.
상황은 이렇다. 00에서 ‘검은색’ 분변통을 받으셨을 거다. 근데 마침 보건소에서 보낸 ‘9월 30일까지 검진하라’는 문자 메시지와 함께 ‘파란색’ 분변통과 안내장도 받으셨다. 그리고 날 잡은 오늘, 받은 두 개의 통에 분변을 담아 00에서 받은 것은 00에 갖다주시고 보건소에서 받은 것은 여기로 가져오신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에서는 보통 이른 봄에 건강검진 안내서를 전국적으로 일괄 발송한다. 그리고 각 지역의 담당자는 관할 지역의 건강검진 수검률을 높이기 위해서 평소에도 검진 홍보를 한다. 개인에게는 문자 메시지를, 사업장(직장가입자)에는 공문을 보내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문의가 심심치 않게 이어진다.
-이거 9월 30일 전에 안 하면 나중에는 40% 어쩌고 불이익이 있다면서요? 계속 문자 오고 난린데…
그 내용을 천천히, 꼼꼼히 확인해보면 연말에 수검인원이 몰리니 미리미리 하시라는 상식적인 것이다. 역시 검진에도 자극적인 메시지가 효과적인 것일까? 뭐 요즘 기사나 뉴스나 온통 자극적인 것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