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연말 일기

이제 사흘 남았다. 금, 토,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 만감이 교차한다는 연말이다. ‘후련’과 ‘후회’가 섞이고 그게 뭐든 무심한 시간은 그저 갈 길을 갈 뿐이다. 이글을 보시는 독자 여러분도 한해를 정리하느라 바쁜 연말을 보내시겠지만, 아시다시피 검진센터는 그야말로 분주함의 정점으로 치닫는다. 검진센터에서 일한 뒤로 매년 연말마다 겪는 일이 올해도 예외 없이 벌어지고 있다.

 

정말 거짓말처럼 말일로 가면 갈수록 수검자가 늘어난다. 당연히 업무량도 많아진다. 일 처리가 밀리니 결과지 발송도 늦어지고 하는 수 없이 잡무를 집에서 하기도 한다. 연말이면 하는 일이라 놀랍지는 않다. 다만 내가 감당해야 하는 몫만큼 내 그릇의 크기가 늘어나지는 않으므로 문제는 터진다. 경험이 없었을 때는 마냥 힘들기만 했다. 어느 정도 알게 되니 피하고 싶어지고, 그게 안 되니 짜증이 쌓이고, 결국 차고 넘쳐서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심지어는 수검자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뭐지? 내가 왜 이러지? 바뀐 건 별로 없었다. 내 그릇이 다 차서 더는 담을 여유가 없을 뿐이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증상이 있을 때 바로바로 처방을 받을 수 있는 것. 주사든 약이든 빠르고 편한 길이 뻔히 보이는데 굳이 힘든 상태를 참고 버틸 이유가 없다. 검진센터도 병원인데 일하는 직원이 골골하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그 장점을 살려 나름대로 잘 버텨왔다. 그런데 올해는 정말 상태가 최악이었다.

일단 항암 직후였던 작년에도 안 걸린 독감에 걸려 버렸다. 내가 좀 안이하기도 했고 독감의 광풍이 세기도 했다. 둘째,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에 난, 여물지 않는 종기를 무모하게 짜다가 덧났고 항생제를 9일 동안이나 먹어야 했다. 약이야 이골이 나서 많이 먹는다고 힘든 건 없는데 신발을 신기 힘들 정도로 발이 붓고 걷기가 불편해서 짜증 났다. 바빠 죽겠는데 말이다. 셋째, 면역력이 바닥에 떨어졌는지 혀에 물집이 잡히고 입안은 헐고 입가는 부르텄다. 아, 젠장. 쉴 수만 있으면 제발 하루만 쉬고 싶었다. 하지만 ‘연말’이다. 병리사 박샘도, 방사선사 권샘도 나 못지않게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도 내색도 안 하고 일하시는데. 거기다가 솔직히 검진센터는 연말에나 느낄만한 스트레스를 평소에도 받아내고 있는 내과를 보면… 그나마 월차로 하루 쉬고 성탄절도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악몽 같은 한 주를 보내고 이제는 나아졌다. 와, 정말 ‘짝짝짝’ 손뼉 치고 싶다. 수검자는 여전히 몰리고 문의 전화는 쉬지 않고 오지만 내 상태가 나아져서 버틸 만하다. 달라진 건 없지만 내가 달라져서 달라졌다. 그렇게 언제나 다사다난한 또 한 해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