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9화 싫지만 하기는 해야겠고
내과에서 메시지가 왔다.
‘000님 지금 올라가시는데 위내시경을 원하심. 시간 되면 껴 넣어 주세요!’
잠시 뒤에 000님이 오셨다. 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검진 대상에 피검사로 간염 검사가 해당되는 분이셨다. 문 샘이 해당사항을 설명해드리고,
오늘 다 하고 가시겠어요?
-유방은 너무 아파서 안하고… 자궁암도 빼요. 다 늙어서 뭐. 나는 위를 보고 싶어. 위암만.
대장암 검사는 분변을 받아오시면 되는데 이것도 안 받으시겠어요?
-(고민하시다가) 하지 뭐.
피 빼는 검사가 있어요. 간암 검진인데 일단 간염 검사 후에…
-(말을 끊으시며) 피? 피 안 빼! 싫어. 절대 안 해.
이게 본임부담금은 없어서 비용은 없어요…
-안 해요. 피 안 빼고 그냥 위만 좀 보고 싶어!
그러세요, 그럼. 그럼 위랑 대장암 검진만 하실 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000님이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시는데 문진을 도왔다. 실은 왜 피 검사를 싫어하실까 궁금하기도 했다. 문진 항목 질문에 경계를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문진을 끝내고 여쭤보았다.
그런데 실례지만… 피 뽑는 게 왜 싫으세요?
-내가 당뇨가 있수. 그래서 병원에만 오면 피를 뽑으라는 거야. 아주 지긋지긋해!
아, 네~~

잠시 뒤에 위내시경 차례가 되어 가스제거제를 드렸다.
-엥? 나 이거 안 먹어. 전에 이거 먹고 어지러워서 큰일 날 뻔 했어. 안 먹고 할래.
이거 안 드시면 내시경을 못 봐요.
-안 먹어. 안 먹는다니까.
전에는 어떻게 하셨어요?
-딴 거 먹고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 있잖아.
아하, 위조영술? 000님 그거는 여기서는 안 하는데… 지금 위 내시경을 하실 거에요. 이렇게 호스가 들어가서 보는 거.
-그거 말고!
죄송하지만 위장조영술을 원하시면 그걸 하는 데로 가셔야해요. 죄송합니다.
-여기선 안 된다구? 거참…
결국 내시경 검사를 안 받고 가셨다. 그런데 10분도 지나지 않아서 000님이 다시 오셨다.
-그럼 여기서 할 수 있는 건 뭐유?
다시 내시경 검사를 권했지만 여전히 원하지 않으셨다.
그럼 대장암 검사만 하시겠어요?
-그것만 해주쇼.
위장조영술을 원하시면 그게 가능한 곳에서 다 같이 하시는 게 편하지 않으시겠어요?
-어딘지도 모르겠고. 그냥 해주쇼.
네, 그럼 대장암만 해드릴게요.
분변통을 드리고 받아오십사 말씀드렸다.
이게 다에요. 결과는 받아오시면 보름 안에 우편으로 보내드려요.
- …
오더를 다시 넣고 수검기관 항목에 대장암을 체크했다. 문진표는 그대로 다시 사용하였다. 버려지지 않고 제몫을 해서 다행이다.
그 이후로도 매번 대변 검사만 하신다.
※만 50세 이상은 매년 분변잠혈검사 대상이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 분변잠혈검사가 바로 ‘대장암’검진이다. 분변잠혈, 즉 변에서 피가 기준히 이상으로 나와 양성판정(혈변)을 받으면 대장내시경 검사를 지원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