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85화 단골
내가 항암 이후로 살이 빠지기도 했고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런지 반갑게 인사를 드렸건만 잘 못 알아보시는 거 같다. 마스크를 조금 내리고 수염을 기르고 있을 때의 사진이 박힌 직원증이 보이게 카디건도 살짝 젖혔다.
-아하, 그이였구만. 난 또 다른 사람인 줄 알고. 어쩌다 살이 그렇게 빠졌대, 그래?
제가 암이었어요.
-으잉? 어디가?
비인두암이라고. 여기에 종양이 생겨서. 귀에 물이 차고 코가 막히고 그랬어요.
-그런 게 있어?
희귀암이래요.
-왜 생겼대?
글쎄요. 원인은 잘 모르겠고. 한동안 비염이 끊이질 않기는 했는데… 이젠 치료는 다 끝났고 지금은 경과만 보고 있어요.
-아이고. 그나마 참 다행이구만.
나는 단골손님의 근황이 궁금한데 자꾸 내 얘기만 해서 화제를 돌렸다.
요즘엔 어디서 달리세요?
-000에서 달리지. 오늘도 10킬로 뛰었어.
오늘도 뛰셨다고? 여기 오시기 전에?
-안 뛰면 좀이 쑤셔가지고. 하하. (제자리에서 막 뛰신다.)
와하하, 대단하세요.
-이번에 4월에는 북한에서 뛰어.
예에? (내가 잘 못 들었나?) 북한이요? 북한에서, 마라톤을 하신다구요?
-70대 대표로 세 명이 뽑혔는데, 제주에서 한 명, 또… 하여간 나도 뽑혔지.
와아, 하하하
-이번엔 2시간 40분 안으로 뛰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