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02화 학습효과
2년 전 어느 날 병리실 안.
-내 혈액형이 뭔지 모르겠어.
혈액형을 모르세요?
-그게 말이요. 나는 AB형으로 알고 있었는데 군대에서는 A형이라고 했던 것 같거든.
그 뒤에 검사는 따로 안 해보셨어요?
-뭐 할 기회가 있나, 안 해봤지. 이거(피검사)로 알 수 있소?
일반검진에 혈액형 검사는 없어요. 추가로 하실 수는 있는데 그럼 돈이 들어가요.
-그려? 얼만데?
글쎄요, 여기서(검진센터)는 수납을 안 해서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몇천원? 그 정도 할 거예요.
-그냥 해주슈.
해드려요?
-예, 해줘요.
그럼 엑스레이 찍고 이따 내과 내려가시면 거기서 수납해주세요.
- …
(잠시 뒤) A형이시네요.
- …!
다시 잠시 뒤 내과.
000 님? 0000원 주시면 됩니다.
-검진인데 돈 내라고?
오늘 혈액형 검사하셨잖아요. 그 비용이에요.
-그거 안 할래.
네?
-괜찮아. 이제 다 아는 데 뭐 하러 해, 안 해도 돼! 필요 없다고.
오늘 병리실 안.
-혈액형 알 수 있어요?
혈액형 검사요? 하실 수는 있는데 검진에는 없어서 하시면 돈을 내셔야 해요.
-얼만데요?
글쎄요. 한 오천 원 되려나? 잘 모르겠네요, 수납은 내과에서 해서.
-함 해줘 봐요.
돈 내야 하는데 하시겠어요?
-금방 알 수는 있어요?
네.
-그럼 해줘요.
잠시 뒤.
-근데 (내 혈액형이) 뭐래요?
흐흐흐. 혈액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