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7화 노인의 기준
고령인구가 늘어 60세 초반은 노인의 노자도 꺼낼 수 없을 정도이다. 검진 특성상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이용해서인지 만화작업만 할 때에 비해 노인을 대하는 횟수가 많아진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내가 검진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이 바로 노인에 대한 시각이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생각이 머리의 한구석을 차지했다.
‘70세 이상은 나이가 의미 없다’
75세의 남자분이 오셨다. 호흡, 걸음걸이 등등 외모로 봐선 80세가 훨씬 넘어 보였다. 앞서 검진을 받은 가신 60세 중후반, 80세 가까운 분들과 너무도 뚜렷하게 비교되었다. 검진을 마치고도 한참을 이야기꽃을 피우다 가셨는데 그 중에 60세가 갓 넘은 한 분은 대화에 끼지도 못했다. 어리다고 말이다.
대하면 대할수록 나이가 아니라 ‘현재의 상태’가 그 사람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요소 같다. 그 ‘현재의 상태’란 당연하게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영향을 끼친 생활 방식, 습관, 다양한 환경적 요소, 유전적 원인, 예기치 못한 우연까지 포함한 ‘결과’일 것이다. 젊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 해서 수검하시는 분들께 가끔 해드리는 말이 생겼다.
건강할 때 검진, 아플 땐 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