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04화 확증편향
건강검진은 사는 곳과 상관없이 검진하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서나 받을 수 있다. 사정이 있어 당분간 타지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마침 검진도 받아야 한다면 그냥 가까운 곳에서 하시면 그만이다. 그런 건강검진에도 단골이 있다. 특별한 의미는 아니다. 검진을 받을 때가 되면 주로 이곳을 이용하신다는 얘기다. 같은 곳만 이용한다 해도 검진 특성상 2년에 한 번 또는 1년에 한 번이니 단골이라고 이름 붙이기는 좀 무리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름까지 기억하지는 못하더라도 낯이 익은 분들이다. 대개는 이 검진센터 근처에 사시거나, 근방의 직장을 다니시거나, 식당, 미용실, 카페 등등의 가게를 하시거나, 그 가게에서 일하시거나 그런 분들이다. 내가 사는 집도 검진센터에서 불과 5, 6분 거리에 있어서 출퇴근길이나 주말에 뭐라도 사려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이분들을 마주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런 단골 중에는 이제 더 이상 뵐 수 없는 분도 있다. 거기엔 물론 돌아가신 분도 계실 거다. 하지만 그보다는 주로 가게를 닫으셨거나 이사를 하셨거나 직장을 옮기셨거나 하는, 그러니까 생활권이 바뀐 분이 대부분인 것 같다. 그리고 그중에는 아쉬운, 정말 아쉬운 몇 분이 있다. 생각해보면 검진센터의 단골이자 거꾸로 내가 그분들의 단골이기도 했다.
먹자골목의 장칼국수. 춘천에 이사 오기 전 혼자 있었던 2년 동안 주로 저녁을 해결하러 갔던 집이다. 이사 오기 직전에 문을 닫으셨으니 꽤 오래되었다. 주문을 하면 냉장실에 있던 반죽을 꺼내서 칼로 썰어 끓여주셨다.
자주 가던 수타 짜장면. 사장님이 내과에서 혈압약을 타시던 분이기도 하다. 역시 주문하면 그 자리에서 텅텅 수타로 면을 뽑아 만들어주셨다. 과도할 정도로 기름진 짜장에 쫄깃한 면발이 최고였다. 점심시간에 주로 이용했다. 은퇴하신 지 벌써 5년.
조금 멀어서 점심때는 아주 가끔 갔던 시장의 마약김밥. 하지만 퇴근길에는 동선이 겹쳐서 순대, 찐빵을 사가기는 편했다. 김밥도 김밥이지만 나는 찐빵이 좋았는데 내 입에는 그 유명한 안0찐빵 보다 맛있었다. 3년 전에 은퇴하셨다. 댁이 근처라 요즘도 퇴근길에 가끔 뵌다.
그리고 오늘 점심 먹으러 가다가 보고야 말았다. ‘임대문의’가 붙은 것을. 내가 검진센터에서 입는 세 벌의 바지를 드라이클리닝 맡기던 세탁연구소다. 이용하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것 같아 갈 때마다 불안했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잘 가는 데는 꼭 금방 문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