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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짜증을 누그러뜨리는 방법

검진센터가 있는 5층에 들어서면, 엘리베이터든 계단을 이용하든 센터가 있는 방향인 왼쪽으로 몸을 틀게 된다. 그러면 센터 앞이 한눈에 들어오고 이때 업무 전 나의 마음 상태가 정해진다. 검진센터의 반자동 유리문 앞에 아무도 없으면 편하고 한두 명 있으면 뭐 그렇구나 싶지만 아주 쪼금 갑갑하고 세 명 이상이 보이면 부담스럽다.

얼마 전 토요일이 그랬다. 몸을 튼 순간 검진센터 문 앞 긴 의자에 앉아계신 세 분, 서성이는 두 분, 유리문을 통해 센터 안을 보고 계신 두 분, 저 끝에 약간 떨어져 계신 한 분 등 총 8명의 존재를 확인하고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몸은 관성대로 망설임 없이 나아갔다. 보안장치를 풀고 열쇠로 문을 여는 동안 뒤통수가 따가웠다. 업무 시작 시간보다 19분이나 이른 지금 이정도의 수검자가 있다면 오늘 하루는 좀 빡셀 것이다.

9시가 조금 넘어 예약하신 분들까지 함께 하니 대기 공간은 꽉 찼고 서있는 분도 있었다. 그런데도 접수대 오른쪽 4인용 검정 인조가죽 소파에 빈자리 하나가 보이는 게 신기했다. 빨리한다고 하긴 했지만 문을 열기 전부터 기다리시던 분 중의 세 분은 아직 접수도 못 했다. 핸드폰이나 신문, 벽에 걸린 대형 티브이에서 나오는 내셔OOOOOO의 한글 자막을 보고 계시지만 이쯤 되면 기다리시다가 슬슬 짜증나기 시작할 때다. 바로 지금 이 대사를 쳐야 한다.

“오늘 검진하러 오신 분들이 평소보다 많으시네요.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양해해주세요.”

 

그럼 30분 정도는 또 별 탈 없이 넘어간다. 그렇게 어찌어찌 한 주를 마감했다.

지난 토요일과 달리 오늘 아침엔 아무도 안 계셨고 나는 여유 있게 준비하며 티브이를 켰다. 그런데 없는 채널이란다. 뭔 소리야? 내셔OOOOOO이 없다니. 송출, 회선 문제인가? 편성표를 위아래로 몇 번을 훑어봐도 없다. 내가 내셔OOOOOO을 트는 이유는 엉뚱한 광고, 황당한 얘기, 자극적인 내용이 없고 게다가 자막이 나오니 무음으로 틀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 방송이나 틀었다간 일단 시끄럽고 딴 데 틀라고 하시고, 시청각적으로 지쳐서 내가 짜증이 난다. 그런 나의 검진센터 최애 채널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지역 케이블 회사에 문의할까? 하필 오늘은 임시공휴일, 일단 티브이는 꺼두기로.

 

사라진 이유를 점심을 먹다 알게 되었다. 내셔OOOOOO은 10월부터 디OO+에서만 볼 수 있단다. 이런! 스트리밍 시대 무한 경쟁의 타격을 받은 것이다. 어쩐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대안으로 다른 채널을 찾았는데 유료!

흠… 원장님을 꼬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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