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29화 새해 첫날
텅~~!
그렇다. 한 해가 또 가고 이제 새로운 한 해가 시작이다. 마침 30일이 토요일이라 31일 일요일과 1월 1일 공휴일을 보내고 오늘은 1월 2일. 그 많던 수검자는 어디로 가고 검진센터엔 적막만이 흐른다. 넘쳐나던 소변 바구니도 여유롭다.
일거리도 수검자와 함께 사라졌다면 좋겠지만 반대다. 연말에 몰렸던 수검자들에 대해 남은 일이 그 수만큼 쌓여 있다. 흉부엑스레이, 유방촬영 판독지를 뽑고 피, 소변 검사 결과지를 뽑고 이걸 모우고 수검자의 결과지에 다시 적고 원장님의 판독을 받고 이걸 또 입력하고 다시 또 통보서로 출력하여 발송해야한다. 그래도 사람을 상대하는 일 보다는 수월하다. 그렇게 열심히 입력하고 있는데…
네?
-이거 저번에 빠져가지고 가져왔어요.
분변을 받아 오셨다구요?
-네.
그게 작년 꺼는 이미 끝났는데요. 말일로다가…
- … …
…
이 분변잠혈 검사는 대장암 검진이라는 이름으로 만50세부터 매년 나오는 거거든요. 올해 대장암 검진으로 하시겠어요?
- …
좀 이르기는 하지만…
-뭐 그렇게 할게요.
그럼 접수하고 문진표를 새로 작성하겠습니다.
이렇게 새해 첫 수검자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