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60화 5월 2일
5월 2일, 000 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오늘은 먼저 변을 가져왔소.
예???
-다음 주에 예약했는데 변을 먼저 받아왔다고.
아~ 네.
-검진하는 날, 변을 받을지 어떨지 몰라서 나온 김에 받아왔지.
잘하셨네요. 아침 식사는 하셨나요?
-먹었지.
그럼 담 주에 내시경하실 때 어차피 금식하고 오시니까 일반검진은 그때 같이 하시고 오늘은 분변만!
- …
그렇게 오신 목적을 이해하고 접수를 한 다음 암문진표 작성을 도와드렸다.
요즘 어디 불편한 데 있으세요? 어디가 안 좋으시다든지…
-내가 말이요, 5월 2일부터 술을 끊었거든. 당뇨약을 먹어요. 근데 술도 많이 마셨어. 매일 먹다시피 했지. 아무튼 기운도 없고 그랬는데 5월 2일부터 술을 딱 끊은 거지. 요새는 그저 (일주일에) 한 석 잔이나 할까…
그니까 요즘 특히 어디가 아프시거나 뭐 그런 건 없으세요?
-5월 2일 술 끊은 다음부터는 뭐 별로. 전에는 매일 마셨다니까.

그렇게 5월 2일을 몇 번이나 강조하시고는 가셨다. 그리고 예약일, 000 님이 다시 오셨다. 접수하고 소변을 받아오시고는 지난번에 못 한 일반검진을 하신다. 나는 접수대에서 접수를 계속하고 있었고 다른 샘이 문진을 도왔다. 이제 혈압을 재기 전 문진표 작성 차례.
지금 현재 드시는 약 있으세요?
-내가 말이요. 5월 2일에 술을 끊었소. 전에는…
접수하는 와중에도 또렷하게 들리는 ‘5월 2일’, 마침 일반검진에는 음주 관련 문항도 있으니 때는 이때다 더욱 확실하게 5월 2일 전후에 대해 언급을 하셨다. 이제 내시경 차례가 되어 저 끝 내시경실로 들어가셨는데. 내시경검사 동의서와 의무기록지 작성을 위해 내과 샘이 설명을 하는 시간. 지금 따로 드시는 약은? 내시경 검사 해보셨어요? 등등 그때마다 작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5월 2일’.
000 님의 검진결과통보서를 작성하고 있는 지금, 또 생각났다. 5월 2일! 대체 000 님에게 5월 2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으, 궁금해. 아~, 여쭤보지 못한 게 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