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8화 가족력
혈압을 잴 때의 주의할 점은 충분히 안정된 상태에서 측정해야 한다. 왜냐면 혈압은 잴 때마다 달라지는 만큼 영향을 주는 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주의사항은 이렇다.
운동 후에는 적어도 한 두 시간이 지난 다음에 잰다.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셨다면 30분이 지나서 잰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병원에서 잴 때는 5분 이상 가만히 앉았다가 잰다.
게다가 밤에 잠을 못 잤다든지, 특별한 질환이 있다든지 하면 일시적으로 혈압이 높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검진센터가 바쁘게 돌아가거나 이따금 수검자가 급히 서두르면 그 5분이란 여유도 갖기가 힘들어진다. 그럴 때는 기초검사 전에 문진표를 작성할 때 일부러 조금 천천히 하기도 한다. 건강 검진에 대한 가벼운 상담을 할 때를 빼면 나에게는 손님과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해서 될 수 있으면 또박또박 얘기하고 들으려고 한다.
OOO(남 81세)님의 가족력을 들을 때도 그랬다. 공통문진표의 두 번째 문항 차례였다.
부모, 현제, 자매 중에 뇌졸중, 심장병, 고혈압, 당뇨, 기타, 암 포함해서 앓으셨거나 혹시 돌아가신 분 있으신가요?
- …
잠시 동안 대답이 없다. 나는 답을 재촉하듯 그 분의 얼굴을 보았다.
-없어요.
네에. 다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