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10화 이 나이
검진센터에 누군가 오시면 언제나 신분 확인이 먼저다. 검진이든 내과나 부인과에서 검사하러 오셨든 말이다. 이때 나이를 묻는 경우는 거의 없고 생년월일로 확인한다. 굳이 나이를 얘기해야 할 때는 ‘만00세’를 이용한다. 그래서인지 그놈의 ‘한국 나이’라는 것의 필요에 대해 갈수록 회의적이다. 서열을 나누는 거 말고는 도통 쓸모가 하나도 없다. 뭐 그게 한국 사회에서 ‘한국 나이’가 갖는 가장 중요한 기능인 거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내가 00살인데 뭐를 하라고 나왔던데 뭘 해야 하는지…?
(아니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실례지만 몇 년생이세요?
-그게 호적이 잘못되어서…
(아니 고무줄 호적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냥) 주민등록에 몇 년생, 그니까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는데요?
-00년생인데…
00년이시면 올해는 분변잠혈 검사만 해당하실 건데, 혹시 모르니까 잠깐만요. 한번 조회해볼게요.
- …
현재(항상 전년도 기준) 직장가입자로 되어있으셔서 올해에 일반검진, 구강검진도 해당되시네요. (연세가 00세이신데 직장가입자로 되어있는 건, 그건 저도 잘 모르겠다는 말은 하지말자)
-그럼 어떡하누?
구강 검진은 치과에서 받으시면 되고요. 일반검진하고 분변잠혈 검사(대장암 검진)는 여기서 하시면 되는데 분변은 이 통에다 담아 오시고, 일반검진까지 하시려면 예약하실 필요는 없고, 근데 공복으로 오셔야 돼요. 그니까 아침 식사나 빵, 과일, 커피, 주스 뭐 그런 거 드시지 말고, 물은 드셔도 되구요.
-내 나이에 그런 것도 해야 하나?
이게 (제가 정한 게 아니라서…)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구요. 지역가입자냐 직장가입자냐, 홀수년 생이냐 짝수년 생이냐 그거로 정해지는데…
-그럼 언제 받나?
올해 안에 하시면 돼요. 위암 검진, 위내시경 검사는 내년에 나오구요.
-그건 작년에 했지.
네, 위암 검진은 2년마다 한 번씩 나와요. 분변잠혈은 만 50세 이상은 매년 나오구요.
(※분변잠혈 검사에서 양성으로 대장내시경을 한 경우 다음 해에는 대장암 검진 대상이 안 되는 경우도 있음)
-그럼 다음 주에 와도 되겠네?
네, 공복으로요. 혈압약, 당뇨약 같이 드시는 약 있으면 그건 드셔도 되구요.
-설명을 잘 해줘서 좋네, 허허. 근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읍시다. 이 나이에 이런 거 계속해야 돼요? 이 나이에 말이요.
그러게요, 글쎄 그거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