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전 10시가 넘지 않았는데도 검진센터 안이 한가하다. 예약하신 분은 오지 않고 거기에 예약이 필요 없는 다른 검진을 받으러 오는 분도 유독 없는 날, 일 년 중에 몇 안 되는 그런 날이다. 좋게 말해 검진과 검진 사이에 여유가 생기는 날이다. 부인과에서 온 소변검사 컵을 병리실에 전하고 나오다가 문득 내시경검사실 쪽으로 고개가 돌려졌다. 거기엔 채혈을 마치고 진경제도 맞고 이제 내시경검사를 기다리는 000 님이 베드 위에 앉아계셨다. 조용하고 약간 어둑어둑한 내시경검사실 안에 별다른 표정 없이, 무심하게 검사를 기다리시는 모습이 왠지 쓸쓸해 보였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뭘 할 것도 없고 해서 그냥 접수대로 돌아와 앉았다.
⑥ 암검진 <공통 문진표>에 대하여
암검진으로 위내시경을 하든 분변잠혈검사를 하든 항목과 상관없이 작성하는 공통된 문진표가 있다. 물론 이 문진표도 내용은 전국 어디나 똑같다. 당연히 암과 관련된 질문들이다.
19화 의사를 따라 하지는 마시고
부제: 근데 이 냥반들이 검진을 안 해?
24년 1월 5일 현재, 발송은 물론 청구까지 마침으로써 23년도 검진 업무를 끝냈다. 화요일, 1월 2일부터는 24년도 검진 업무가 시작되었다. 연도가 바뀌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다. 검진수가도 고지되지 않아 아직 그대로고 오늘도 어김없이 외래 첫 검사는 독감이며 심지어 채용 검진이 늘어서 지난 연말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23년도 검진 업무를 나름 빨리 끝내서 홀가분하다.
23년의 끝자락 29일, 30일에 좀 웃긴 일이 있기는 했다. 29일, 정신없이 일하다가 1내과 원장님이 일반검진을 하는 바람에 갑자기 내과와 여성의학과, 검진센터 다른 샘들은 해당 검진을 했는지 궁금했다. 특히 안 하면 과태료 대상인 직장가입자 검진! 근데 경험상 대체로 직원 샘들은 알아서 잘하신다. 문제는 1내과, 2내과, 여성의학과 세 분의 원장님, 이 냥반들이다. 다행히 1내과는 29일에 하셨지만 다른 원장님은? 예상대로 역시 ‘안 하심’이다. 얼른 이 사실을 알리고 두 분 모두 30일에, 23년의 마지막 날, 그것도 토요일, 바빠 죽겠는 날에 하셔야 했다. 29일 밤, 내일 일기 예보 눈 소식에 나는 종교는 없지만 아무튼 눈이 많이 내리기를 기원했다. 아침이 되고 눈이 없는 차갑고 메마른 길바닥 때문에 실망스러운 출근길이 되었지만.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마지막 30일, 토요일인데 검진센터가 조용한 것이다. 게다가 첫 번째, 두 번째 예약자가 ‘노쇼’까지 하셨다. 이럴 땐 무조건 가만히 있어야 한다. ‘왜 안 오시지?’ 같은 건 생각도 말자. 9시 반쯤부턴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검진 마지막 날답게 한 번의 파도는 있었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뭐. 그리고 그 와중에 원장님이 검진하러 오시는 모습을 보며 온라인에서 본 인상 깊었던 글귀가 생각났다.
‘의사가 하는 말을 따라야지 의사가 한다고 따라 하지는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