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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귀가 뻥 뚫렸다
 부제: 자신을 안다는 것

목감기가 오래가고 있었다. 갑자기 고도가 바뀔 때처럼 오른쪽 귀가 먹먹했다. 이비인후과에 갔다. 콧물과 가래가 이관을 막은 걸 확인하고 3일 치 약을 처방 받았다. 다 먹었는데 낫지 않아 다시 5일 치를 받고 그마저 하루치가 남았는데 별 변화가 없어 스트레스가 쌓였다. 그런 상태로 일을 하는데 차트를 볼 필요도 없는, 내 머릿속에 진상으로 각인된 분이 오셨다. 이런 까다로운 손님은 차트에 우리만 아는 표시를 해둔다. 혹시나 당사자가 컴퓨터 화면을 보실 수도 있고 우리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므로. 아무튼 성함과 생년월일을 여쭈었고 잘 안 들려 한 번 더 묻고는 일단 들린 대로 대기자 명단에 후다닥 썼다. 보통 본인이 직접 쓴다. 그런데 내가 적은 걸 보시고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못 듣나? 이름도 틀렸네?

 

내가 잘 못 들은 것도 맞고 휘갈겨 쓴 탓도 있을 텐데 안 좋은 상태에 기분 나쁜 소리까지 들으니 가뜩이나 건조했던 감정이 가뭄의 논바닥처럼 갈라졌다. 욱하고 올라왔지만 상대가 듣는데도 대놓고 저런 말씀을 하시는 분에게 뭐라 해봐야 나만 손해라는 결말이 너무 뻔했다. 방사선 샘에게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날리고는 신경을 껐다.

남은 약을 다 먹고 항생제 용량을 높인 처방을 받은 이틀 뒤 이번엔 효과가 분명했고 그만큼 기분도 나아졌다. 조금은 가벼워진 상태로 업무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예약하신 분이 오셔서 차트를 열었는데 ‘진상’표시가 볼드체다. 먼저 숨을 고르고 설명할 것은 하되 엮이지 않으려고 말을 아끼며 접수했다. 소변을 받아오시고 신체 계측을 하고 문진표 작성을 도왔다. 드시는 약도 가족력도 없고 담배 끊고 술도 안 하시고 운동량도 적절했다. 마지막으로 혈압도 정상이라 나도 모르게 “다 좋으시네요”가 튀어나왔다. 말 한마디에도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는 분들이다. 아차, 싶었다. 그런데…

 

-성격만 나쁘지, 다른 건 괜찮아요.

 

예?! 티는 내지 않았지만, 깜짝 놀랐다. 그 어렵다는 ‘너 자신을 알’고 계시다니. 사람을 안 다는 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귀가 뻥 뚫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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