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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클립 유감

검진 업무에 태블릿을 이용하면서 근무 환경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낯설어 번거롭기도 했지만 열 달이 조금 넘은 지금은 ‘익숙’을 지나 ‘능숙’이 되었고, 효과는 선명하다. 관련 업무 시간과 소모품 사용이 줄어든 것이다.

검진 센터에서 하던 대부분의 업무가 종이로 대표되는 소모품들을 써가며 검진 정보를 기록하고 입력하는 ‘손’으로 이루어졌었다. 현재는 정보가 연동되니 한결 간편해졌다. 이렇게나 클립을 유용하게 많이 사용하고 있다(98화 별거 아닌데…)고 말했던 내게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넉넉히 쌓여있는 클립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러다이트 운동이나 인공지능의 영향 같은 시대의 변화가 떠오를 정도로 말이다. 연말이 되어 클립을 담은 투병 플라스틱 상자의 바닥이 드러나면 불안했던 시절이, 그래봐야 일 년 전인데도 무척 오래된 기억 같은 이 느낌이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쓸모가 변한다는 사실, 존재감이 줄어드는 존재들이 생길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나의 쓸모는?’의 물음은 부담스럽다. 편리와 줄어든 업무 시간을 위안 삼아 클립을 보며 드는 잡생각을 떨치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쓸모가 줄어든 물건들이 줄줄이 보인다. 스테이플러, 수정 테이프, 딱풀, 제약사의 홍보 볼펜들, 결과 기록지, 문진표, 통보서 출력 용지, 발송 봉투….

 

그런데 그만큼 아낀 시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쓸모가 줄어든 물건들을 피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잿빛 하늘.

내일은 예보대로 맑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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